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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wcap1, 2006/11/05 01:49, Note]

요즘 '신의 물방울'이라는 일본 만화를 보고 있습니다. 와인이라는 제 입장에선 조금 생소한 주제를 내세운 만화이긴 합니다만 재미있더군요. 사실 요즘에는 주위에서 와인 찾는 사람이 많긴 합니다. 언젠가 절친한 친구 집을 찾았는데 소주 좋아하던 녀석이 와인 한 병 사는 것(매일 마신다고 하더군요)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습니다.

신의 물방울 내용은 이렇습니다. 일본 최고의 와인 평론가인 칸자키가 친아들 시즈쿠와 양아들 토미네 이세 가운데 자신이 최고로 꼽는 신의 물방울과 12가지 와인(12사도)을 찾아내는 사람에게 자신의 전 재산과 와인을 물려준다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하죠. 만화는 이미 뛰어난 와인 평론가인 토미네 이세와 와인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타고난 개코(절대 미각이지만 ㅋㅋ)인 주인공 시즈쿠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레 와인에 대한 지식을 배울 수 있게 해줍니다. 물론 와인에 대한 평, 표현은 만화답게 너무 과장된 건 아닌가 싶긴 하지만.

이 만화는 벌써 우리나라에서만 16만부를 넘어섰다고 하더군요. 만화를 보다보면 천엔, 2천엔급 저가 와인이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의 맛을 이겨낼(?) 때도 있습니다. 이런 와인을 보면 한 잔 마셔보고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그래서 지식검색으로 찾아보니 1권에 등장했던 Ch. Mont-Perat(샤또 몽페라), 주인공이 결전을 준비하며 마셨던 Ch. Talbot(샤또 딸보), 4권에 나오는 Ata Rangi(아타 랑기), 이탈리아 와인 마니아가 즐겼던 Paleo(팔레오) 등을 국내에서 구할 수 있다고 나와 있더군요. 가격은 우리 주세가 높아서 만화에서처럼 싸게 구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대부분 5∼9만원 사이라고 합니다. 마셔보고 싶지만 참아야겠군요.

만화를 보면 와인에 무지한 제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디켄팅이라는 와인의 숨은 맛을 끌어내는 방법이죠. 만든 지 2∼3년 밖에 지나지 않은 젊은 와인의 떫거나 신 맛을 완화시키는 방법으로 나옵니다. 디켄터라는 용기에 주인공이 곡예를 하듯 가늘게 와인을 옮기는 것이 디켄팅입니다. 이렇게 하면 공기를 접한 젊은 와인의 견고함이 풀어지고 숨어있던 향과 단맛이 살아난다고 나옵니다.

뭐 디켄팅의 효과나 그런 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만화에서 얘기하는 디켄팅이라는 건 가능성이 있다는 가정 하에 이를 열어주는, 펼칠 수 있게 해주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잡지나 인터넷 미디어(대부분 잡지였죠)를 통해 기자 생활을 한 지 이제 10년차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 동안 숱한 업체의 흥망을 봐왔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디켄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도 있었지만 가능성이 있어도 기회를 얻지 못한 곳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국내 IT 업체를 보면 엔지니어 출신이 사장을 맡고 있는 곳이 꽤 많습니다(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앞서서 다른 요소, 예를 들면 디자인이나 패키징, 인터페이스 등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혹은 마케팅을 외면하고 그냥 '잘 만들면 된다'거나 '기술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을 갖는 경우도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MP3 플레이어를 보면 아이리버는 처음에도 제품 자체가 별로 좋았던 건 아니지만 디자인 덕을 많이 보고 성공가도를 달렸는데, 코원 같은 경우(처음에는 거원) 기술은 좋았지만 처음에는 디자인을 외면해 상대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기도 했었죠. 물론 지금은 디자인에도 예전보다는 신경을 써서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게 되었지만.

몇 달 전에 모 중소업체가 휴대폰용 게임패드를 발표하는 자리에 간 적이 있습니다. 보통 기자간담회를 하면 축제 분위기 혹은 기술 설명 등을 하는 그런 분위기인데 이 업체의 발표회에서 본 업체 사람들 얼굴은 모두 상기되어 있더군요. 마치 늦둥이 아들이라도 본 것처럼 울먹이는 모습을 보고 참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자기 자식처럼 생각하는 제품이라니 믿어도 되지 않겠습니까? 시장에서 지금 반응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회사들의 제품이 꾸준히 인정받으려면 정책적인 '디켄팅'이 필요합니다.

중소기업의 경우 대부분 기술 하나 믿고 창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여건은 열악하죠. 디자인이나 마케팅 같은 쪽은 특히나 그런 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기술 평준화가 이미 진행될 대로 진행된 IT 분야가 되어버리고 나니 토종이 살아남기도 더 어려운 상황이 되기도 하는 것 같고요. 이런 분야를 공동으로 개발하거나 정보통신부 혹은 산업자원부 등이 나서서 지원책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정책은 많아도 실제 업체에게 가는 지원책을 체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니 '디켄팅'을 한 번 해주는 그런 자리를 마련하는 게 좋겠다는 것입니다. 가능성을 열어주는, 디켄팅 같은 정책이 있어야 중소업체도 제 맛을 낼 수 있지 않을까요?

만화에서 신의 물방울과 12사도를 찾으려면 꽤 험난한 여정을 겪게 되는데요. 아마 12사도가 값만 비싼 건 아니지 않을까(그랬으면 하는 바램이 더 클까요?) 싶습니다. 우리도 값지게 찾아낼 수 있는 그런 와인 같은 곳이 커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ㅡ..ㅡ 화장실에서 만화보다가 별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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